
해방기 지성의 ‘상아탑’과 ‘토치카’ : 김동석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초록
이 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1~6』(1979~1989)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방기 한국 지성의 역동성과 다층성을 본격적으로 고찰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쓰였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특징지어지는 해방기 현실을 또다시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회수하는 중첩된 흑백 프레임에서 벗어나 ‘황폐한 공간성’이 아닌 ‘응축된 시간성’이라는 관점에서 해방기 지성을 새로이 이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해방기를 유일한 활동 시기로 삼았던 김동석(1913~?)의 글쓰기를 정독하고, 여기에 담긴 반전ㆍ반파시즘 사상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 그리고 평화적 공존의 꿈을 분석한다. 김동석이 해방기에 남긴 주요 시인ㆍ작가론과 문화론에는 호전적인 친일 모리배와 일제 파시즘의 잔재를 문화의 힘, 즉 ‘시탄(詩彈)’으로 무너뜨리자는 절실한 호소가 담겨 있다. 반전 평화주의에 대한 그의 일관된 믿음은 김동리 순수문학론의 비순수성이나 당대 자칭 애국자들의 눈먼 애국심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비판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김동석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고타 강령 초안 비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를 막연하게나마 지식인 윤리의 지침으로 삼아, 지식인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상아탑’을 거점 삼아 학문의 자율성과 대학 자치, 그리고 언론 자유 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지닌 이러한 엄정함은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도 남한에 남아 부르주아 인간형 비판이라는 의제에 따라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학술적 실천을 감행하게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김동석은 월북 문인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남한 전체를 ‘토치카’화한 후 그곳에 남아 하려던 일을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기억하는 일이다. 망명객보다는 국내혁명가가 더 애국자라는 믿음을 가졌던 김동석은 이승만 정권에 의한 좌익 탄압이 가일층 노골화하고 한반도에 점차 전운이 드리워지는 그 시점까지도 평화적 공존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김동석의 밀도 있는 사유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전개된 다종다양한 변혁운동, 즉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이 다름 아닌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의 짧은 해방기에 매우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환기한다. 김동석의 글쓰기는 해방기의 이러한 ‘응축된 시간성’을 추체험하게 하는 생생한 텍스트로 우리 지성사에 새로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examine the dynamism and multi-layeredness of Korean intellectuals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by interpreting the period not as a “devastated space” but as a moment of “condensed temporality.” Rather than reproducing the entrenched black and white frame that reduces the realities of the liberation period to a binary ideological confrontation between left and right, this article offers a close reading of the writings of Kim Dongsuk(1913–?) whose intellectual concerns were characterized by antiwar and anti‐fascist thought, reflections on democracy, and an aspiration for peaceful coexistence. Kim’s essays on culture articulate an urgent call to dismantle the remnants of Japanese fascism and militaristic colonial collaborators through the power of culture, which he referred to as “poetic bullets(Sitan).” His consistent commitment to anti-war pacifism provided the critical basis for dissecting the pseudo-purism of Kim Dong-ni’s literature theory and exposing the blindness of self-proclaimed patriots of the time. As a Marxist intellectual, Kim anchored his ethical stance in the principle articulated in the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arguing that intellectuals should exercise their capacities from within the “ivory tower.” Kim’s rigor also helps explain his decision to remain in South Korea after the establishment of a separate government, as he pursued Shakespearean scholarship as part of his critique of the bourgeois human type. Although Kim Dongsuk is classified as a Northward-crossing writer, what truly matters is recalling what he sought to accomplish by remaining in a South that had been transformed into a vast “pillbox.” Kim did not abandon the seemingly impossible dream of peaceful coexistence, even as left-wing repression intensified under the Syngman Rhee regime and the shadow of war gradually descended over the Korean Peninsula. Kim’s profound reflections on war and peace serve as a reminder that the various revolutionary movements that emerged in South Korea had already unfolded in a highly condensed form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Kim’s writings, as vivid texts that allow us to vicariously experience this condensed temporality of the liberation period, can be newly situated within the intellectual history of modern Korea.
Keywords:
Kim Dongsuk, liberation period, condensed temporality, anti‐fascism, anti-war pacifism, ivory tower, pillbox, Northward-crossing writer, peaceful coexistence, intellectual history키워드:
『해방전후사의 인식』, 김동석, 해방기, 응축된 시간성, 지성, 반파시즘 사상, 반전 평화주의, 상아탑, 토치카, 월북, 공존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진흥사업단)을 통해 K학술확산 연구소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AKS-2021-KDA-125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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