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 춘원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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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춘원이 평화를 얻기 위해 어떻게 글쓰기를 했으며, 그에게 민족이나 문학은 무엇이었는지를 그의 삶과 연계시켜 살펴본 글이다. 문학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천착했던 흔적은 그의 삶과 글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가 「文學이란 何오」에서 던진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문학의 위기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유효하다.
춘원은 제1차 일본 유학 중에 일본인들로부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차별받고 멸시받으면서 자신과 조선인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이 시기의 글 가운데 「혈누 - 희랍인 스팔타쿠스의 연설」, 「옥중호걸」, 「사랑인가」는 춘원의 당시의 행적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이들에서 춘원은 자신과 철창에 갇힌 호랑이 그리고 로마의 검투사를 동일시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사랑받으려는 욕망을 글쓰기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춘원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춘원은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남강의 고향인 용동의 모범촌 건설에 헌신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블라디보스토크와 치타에 머물던 춘원은 억압당하고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 조선인 이주노동자들을 보고 농촌계몽운동이 필요함을 절감하며, 조선인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모범촌을 조성할 기획을 한다. 이 시기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고민하면서 쓴 글로는 「文學이란 何오」와 「무정」이 있다. 「文學이란 何오」에서 민족문학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글쓰기에 전념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춘원은 도산의 사상을 수용하여 「무정」을 발표하면서 제국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민족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
1921년 4월 조선으로 귀환한 춘원은 글쓰기에 전념하여 수많은 글들을 신문과 잡지에 게재하였다. 춘원이 글쓰기에 전념한 이유는 ‘읽을 것을 가지지 못한’ 조선의 젊은이들을 염두에 두고 ‘조선인에게 읽혀지어 이익을 주려’ 하는 것이고, 자신이 소설을 쓰는 근본 동기가 ‘민족의식, 민족애의 고조, 민족운동의 기록, 검열관이 許하는 한도의 민족운동의 찬미’라고 밝히고 있다. 1938년 이전까지는 검열을 의식하여 자신의 민족의식을 애써 감추기도 하고 검열을 의식하고 집필했지만 연재가 중단되거나 출판 불허 판정을 받기도 하면서 민족담론의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글에서는 민족담론은 발견할 수 있어도 국가담론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임시 정부를 염두에 두고 국권 회복이나 독립에 대해 언급을 피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조선에 정주하면서 검열을 의식하여 그렇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ow Chunwon wrote to be in peace and what the nation and literature meant to him, by associating those aspects with his life. Traces of his endless agony and pursuit are shown in his life and work; His question in What is Literature is relevant even today when crisis of literature is continuously discussed.
While he experienced discrimination and oppression as a Korean during his first stay in Japan for his study, he focused on writing reflecting on himself and his identity as a Korean. During this time he wrote Tear of Blood: Speech of Spartacus, the Greek, Okjunghogeol and Is This Love?, through which one can take a glimpse of his life and thoughts at the time. In his works, Chunwon empathized himself with a tiger behind bars and a Roman gladiator to express his desire for freedom, equality and love. It is likely that Chunwon wrote to heal his broken heart.
As he worked as a teacher at Osan School, Chunwon was dedicated to building a model village in his hometown, Yong-dong. After he left the school, he stayed in Vladivostok and Chita, where he saw Korean immigrant workers who were oppressed and forced to continue unfair living. Chunwon realized dire need for enlightenment movement for rural communities and developed a plan to build a model village to prevent Korean labor force from leaving the country to make a living. What is Literature and Mujeong were written during this time when he seriously contemplated the significance of literature. In What is Literature, he speaks about his reason for writing, which is to bequeath the national literature to the next generation. Chunwon adopted Dosan's visions and published Mujeong. He committed himself to growing national competence to fight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In April, 1921, he returned to Korea, focused on writing again and published his works on newspapers and magazines. Chunwon focused on writing because he thought of young Koreans ‘who did not have things to read’ and wanted to ‘provide Korean with benefit through reading’. He said the reason why he wrote novels was to promote national consciousness, patriotism, recording of the national movement, praise on the national movement, but only to the extent that was allowed, and if he could, instigation. He said it was not only his past but also throughout his whole life. Until 1938, he was much concerned for the censorship so that he tried to hide his national consciousness in his work, yet he had to stop publish serial stories or some of his works was not allowed for publishing. But he continued to write the discourse on nation. While the discourse on nation was found in his writing at the time, the discourse on country was not easily found. It is possible that he intentionally avoided comment on recovery of the national sovereignty or independence consider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however there is a possibility that he was conscious of censorship during his stay in Korea.
Keywords:
peace, immigration, independence, national consciousness, writing키워드:
평화, 이주, 독립, 민족의식, 글쓰기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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